D+299



- 내일이면 300일. 아기는 잘 크고 있다. 난 해 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재주를 하나하나 늘려가고, 키가 자라고, 염려스러웠던 부분이 어느 순간 괜찮아져 있고 그렇다.


- 죽을 떠서 숟가락이랑 같이 놔 줘도 무조건 손만 썼는데, 어제오늘은 숟가락을 한 번씩 쥐어 보고 물기도 한다. 이렇게 서서히 발전해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날이 오겠지. 손으로 죽 먹기도 기술이 늘어서 입으로 들어가는 양이 늘었다. 옷 갈아입히며 보니 배가 제법 봉봉.


- '안녕' 소리를 들으면 손 흔들기 재주는 배운 지 며칠 됐다. 오늘은 어느 어린이집의 선생님이 원생 아이에게, '저기 아기다. 안녕 해.' 하고 시키자 그 말을 알아듣고 은수가 먼저 손을 흔들어서 선생님도 나도 놀랐다. 


- 아기가 잘 크고 잘 먹고, 잠자는 것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마음에 감기가 온 것처럼 요 며칠 우울하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아기에게 웃는 낯을 보이기 위해 힘을 쥐어짜야 하고, 억울한 마음도 들고, 부모 친구 누구에게도 입도 벙긋하기 싫은 기분이다. 


-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숨을 좀 쉬려면 이렇게 커피 기운을 빌어 아기가 잠든 후 내 잠을 깎아내야 한다. 


- 전엔 설거지가 밀렸거나 청소기를 밀지 않은 상태를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건 많이 놓고 지내지만 그래도 힘이 든다.


- 아이가 잘 먹어주어 기특하고 고맙고 다행스럽지만, 세 끼 먹이고 치우고 씻기는 게 버겁다. 엄마가 돼서 할 말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힘들다.


- 육아서를 계속 읽고 있는데, 어설프게 알게 된 건 늘어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늘어나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들이 충돌한다.


- 그래도 주문처럼 은수야 사랑해 엄마는 은수를 사랑해 하고 생각날 때마다 말한다. 





D+294



- 오늘은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잔 날. 

-- 저녁 이유식은 지금까지 중에 가장 덜 흘렸다.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 낮잠 자고 일어나서는 두 시간 가까이 혼자 잘 놀아서 반찬도 만들고 이유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

-- 똥은 무려 네 번이나, 그것도 푸짐하게.

-- 이불에서 뒹굴뒹거리다 9시에 스르르 잠들었다.



- 가지 볶음, 부추 겉절이, 버섯들깨탕 만들었는데, 남편이 늦어서 못 먹였다. 실은 아직도 퇴근 전. 늦어진다는 전화 받고 국에 밥 말아서 냉장고에서 묵은 마늘종무침 하나 가지고 마시다시피 뱃속에 들이부었다. 



- 아이가 잠든 후 마음속으로 백을 세며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 후 살며시 나와 냉장고에 남아 있던 딱 한 잔 분량의 리슬링을 따랐다. 홀짝홀짝 마시며 어질러진 거실 정리,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한 잔 더 마셨으면 싶었지만, 탄산수로 대신. 탄산수가 없었다면 올여름을 어떻게 났을지. 예닐곱 상자는 주문해 먹은 것 같다.



- 그래서 오늘은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 난 내 딸이 항상 너무 이쁘다고 생각하는데, 두 달 전 사진만 봐도 왜 이렇게 통통하고 사내아이 같아 보이는지. 



- 하지만 보통 출산 직후 아기는 빨갛고 쭈글쭈글하거나 못생겨 보인다고 하던데, 우리 은수는 처음 보자마자 너무너무 예뻐서 내가 어떻게 저렇게 이쁜 애를 낳았나 어리둥절했다. 





D+252 : 수면교육



사흘 전 밤부터 수면교육이란 걸 갑자기 시작했다. 


아기는 만 6개월부터 밤중 수유를 끊고 약 한 달가량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작은 일을 시작하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젖을 물려 재우기 시작했다. 새벽에 깨면 자동으로 옷을 올리고 젖을 물리며 계속 자려고 했다. 낮에도 힘들면 방에 안고 들어가 젖을 물리고 누워 있기도 했다.


사흘 전 밤에도 젖을 물려 재우려고 했다. 한참 빨다가 이제 자려나 홱 빼고 돌아누웠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다시 좀 더 빨다가 홱 빼고 돌아눕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충분히 늦은 시간인데도 잘 기미가 안 보였다. 새벽에 자꾸 깨서 젖을 무는 것도 아기나 나나 서로 깊은 잠을 못 자는 원인이 되고, 언제까지나 아기띠에 의존해서 재울 수는 없겠다 싶었다. 아이를 두고 나와 몇 달 전에 아는 아기 엄마한테 빌려 집에 있던 <베이비 위스퍼>를 꺼내 들었다. 6장 안아주기-눕히기 중 우리 아기 월령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읽었다.


아기는 징글징글하게도 울었다. (실제론 아마 총 1시간여 울은 듯) 어느 정도 울리고 나니 인제 와서 젖을 물리면 지쳐 있던 차에 금세 잠들지는 몰라도, 엄마 왜 이렇게 저를 힘들게 하다가 주시는 거예요 하고 아기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원망할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우는 정도가 심해지면 안아서 달래려고 했는데, 몸을 뒤로 휘면 실랑이하지 말고 다시 눕히라고 읽은 대로 했다. 잠이 든 후에 눕히는 게 아니라, 우는 아기 상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바닥에 눕히고 스스로 잠들도록 하는 게 포인트.


낮잠 역시 맘마 먹고 거실에서 놀게 두었다가 졸음이 올 때쯤 안방에 함께 들어가 아기 노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졸음 신호를 보이면 노래도 부르고 토닥이고 칭얼거림이 심하면 안아주지만, 오히려 자꾸 몸을 뻗쳐서 바닥에 곧 뉘었다. 그럼 일단은 더 칭얼거리지만 너 스스로 잠들 수 있다고, 곧 잠이 올 거라고 달랬다. 그러면 5~10분 내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재우고 나니 일단 잠이 들면 전처럼 10분, 20분 이내에 일찍 깨거나, 어떤 소리 자극 때문에 깨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최소 40분은 잔다. 자다 울면서 깨면 더 자고 싶은데 안 됐을 때 불만스러워서 그런 것이라, 역시 잠깐 안아주었다가 눕히고 달래서 다시 재우면 더 잤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면 이유식 먹을 때 장난을 치려는 게 줄었다. 여전히 이유식 먹는 양이 같은 월령의 다른 아기들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으로 적은 것 같지만, 이건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려고 한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아기 띠에 안겨 자려던 습관은 준 대신 낮이고 밤이고 젖을 물고 자던 것을 고치고 있다. 먹고 - 놀고 - 자고의 패턴이 잘 자리 잡아 간다. 아기의 행동이 예측이 된다. 겨우 4일째이지만 아기 재우는 게 훨씬 수월하고 뿌듯하다. 


이제 잠에 관한 목표는 늦어도 9시 전엔 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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