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이면 300일. 아기는 잘 크고 있다. 난 해 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재주를 하나하나 늘려가고, 키가 자라고, 염려스러웠던 부분이 어느 순간 괜찮아져 있고 그렇다.
- 죽을 떠서 숟가락이랑 같이 놔 줘도 무조건 손만 썼는데, 어제오늘은 숟가락을 한 번씩 쥐어 보고 물기도 한다. 이렇게 서서히 발전해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날이 오겠지. 손으로 죽 먹기도 기술이 늘어서 입으로 들어가는 양이 늘었다. 옷 갈아입히며 보니 배가 제법 봉봉.
- '안녕' 소리를 들으면 손 흔들기 재주는 배운 지 며칠 됐다. 오늘은 어느 어린이집의 선생님이 원생 아이에게, '저기 아기다. 안녕 해.' 하고 시키자 그 말을 알아듣고 은수가 먼저 손을 흔들어서 선생님도 나도 놀랐다.
- 아기가 잘 크고 잘 먹고, 잠자는 것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마음에 감기가 온 것처럼 요 며칠 우울하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아기에게 웃는 낯을 보이기 위해 힘을 쥐어짜야 하고, 억울한 마음도 들고, 부모 친구 누구에게도 입도 벙긋하기 싫은 기분이다.
-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숨을 좀 쉬려면 이렇게 커피 기운을 빌어 아기가 잠든 후 내 잠을 깎아내야 한다.
- 전엔 설거지가 밀렸거나 청소기를 밀지 않은 상태를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건 많이 놓고 지내지만 그래도 힘이 든다.
- 아이가 잘 먹어주어 기특하고 고맙고 다행스럽지만, 세 끼 먹이고 치우고 씻기는 게 버겁다. 엄마가 돼서 할 말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힘들다.
- 육아서를 계속 읽고 있는데, 어설프게 알게 된 건 늘어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늘어나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들이 충돌한다.
- 그래도 주문처럼 은수야 사랑해 엄마는 은수를 사랑해 하고 생각날 때마다 말한다.

